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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02 아비투스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배우고 듣고 행하는 것이 내일의 우리를 만든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의 존재에 각인된다. 모든 흥미로운 만남, 여행, 팟캐스트, 지나온 발걸음으로 우리는 새로운 문화, 사회, 신체 자본을 쌓는다.
회복탄력성은 훈련으로 키울 수 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일 때마다 우리는 회복탄력성을 훈련하는 소중한 기회를 갖는다. 극심한 정체, 슬럼프, 열두 번째 거절... 우리는 이런 역경에서 많은 것을 훈련할 수 있다. 감정 폭발을 억제하는 법, 피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법, 불행 중 다행을 인식하는 법, 도움을 받아들이고 해결책과 대안을 찾는 법...
그러므로 아이에게는 사사건건 간섭하는 헬리콥터 부모 대신, 고난을 견디고 그 속에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여유로운 동행자가 필요하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능력이 없으면 예상되는 위험을 감수하지 못한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큰 성공은 기대할 수 없다.
단련인가 보호인가. 미국 사회학자 아네트 라루가 이 문제에 대해 연구했다.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 부모의 자녀는 학자 부모의 자녀보다 더 자립적이고,더 많이 허용되고, 더 자유롭게 행동한다. 학자 부모는 양육을 돌봄으로 보고,  자녀의 안전을 지키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사람에게 신뢰, 시간, 관심을 주는 사람은 관대하다. 다른 사람이 먼저 빵을 고르게 한 후 마지막에 남은 빵을 먹는 사람은 관대하다. 다른 사람의 권리도 존중하는 사람은 관대하다. 다른 사람의 작은 실수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모른 체하는 사람은 관대하다.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이익을 챙길 기회가 있더라도그것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관대하다. 열설처럼 들리지만 관대함은 사소함에서 시작된다.

 

드라마 사랑의 이해에서 박미경이 하상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 나는 그런 다정함을 지능으로 보거든. 그런건 하루 아침에 쌓이는게 아니거든"

사소한 배려도 지능이라는 말을 나도 공감한다.

 

 

 

상류층은 자신들을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하는 역사의 일부라고 느낀다. 상류층의 아비투스에는 강한 계급의식이 각인되어 있다. 널리 명망이 높은 가문은 유년기부터 큰 자부심을 안겨준다. 명문가의 아들딸로서 아무것도 안 했더라도, 그들은 가족의 지위와 재산을 자기 것으로 여긴다. 경제 전문 기자 크리스티안 리켄스가 지적했듯이 "백만장자의 공통점은 강한 자의식과 사명감이다. 재산을 상속받았음에도 모두가 정당하게 부자가 되었다고 믿는다. 부자들은 자신이 평균 이상으로 책임감이 높고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부가 증가할수록 유용성을 따지는 질문은 점점 더 사라진다. 유용성 대신 세련됨과 우아함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판타지를 갖는다는 뜻은 무언가를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기발한 앱, 스마트한 기술, 수요가 높은 서비스 등으로 실현되어야 비로소 창의성이다.
창의성이란 아이디어를 저렴하게 사서 비싸게 파는 의식적인 결정이다.
스턴버그에 따르면 아이디어에서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멋진 생각을 빨리해내는 능력보다 훨씬 더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시장을 관찰하고 아이디어의 잠재성을 가늠하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모든 회의론을 견디는 능력이 중욯다. 특히 주변에서 한심하게 여기고, 동료가 비판하고, 심사부가 고비용을 문제 삼아 가로막고, 고객이 그 기획을 받아들일 만큼 아직 성숙하지 않은 것 같을 때도 아이디어를 관철할 수 있어야 한다. 
돈은 명품 가방이 아닌 자유를 선사한다. 
"나는 어렸을 때 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다. 나이가 든 지금, 나는 내가 옳았음을 안다"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은 냉소적이지만 언제나 정곡을 찌른다.

자유로운 삶. 제일 부러운 삶 아닐까.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싶은 것을 먹고 가고싶은 곳에 가는것. 그리고 아무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것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이지.

 

 

돈이 넉넉한 사람들은 타인의 선의에 덜 의존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말하자면 재산의 차이가 다른 아비투스 형식을 불러낸다. 가난한 사람들은 연대해야 삶을 더 잘 꾸려나갈 수 있다. 반면 부자들은 타인의 의견에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뜻대로 목표를 추구할 수 있고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득권을 안전하게 지킨다.
경제자본이 넉넉하면 굴복하지 않아도 된다. 영화 [겜블러]에서, 사체업자 프랭크로 분한 존 굿맨이 이것을 설명한다. "30억원을 딴 게 무엇을 뜻하는지 바보 멍청이도 알아. 죽을 때까지 'fuck you - 지위'를 갖는 거야. 누군가 당신에게 지시를 내려? fuck you! 상사가 괴롭혀? fuck you! 영리한 남자는 'fuck you'로 사는거야"

 

나도 돈많아서 꼬우면 "펔유" 하면서 살고싶다.. 그 인생 참 살맛나겠네 

 

 

 

 

어휘는 말하는 사람의 가치를 높이거나 떨어트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을 가려서 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말하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언어다. "언어라는 맥락에서, 일반 대중이 생각 없이 쏟아내는 말과 상류층의 고도로 검열된 언어가 대조된다"
최정상 리그에서 우리는 모두 까마귀입니다. 까마귀들은 잘 알려졌듯이 서로의 눈을 파먹지 않습니다. "당신이 대우받고 싶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라"는 목표에 충실하려면, 당연히 사려 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내부 고발자는 항변의 기회도 없이 순식간에 리그에서 추방됩니다.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위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싶은 곳에 이미 도달한 사람들과 접촉해 사회 문화적 환경을 확장하기 더 쉬워진다. 닮고 싶은 사람과 알고만 지내더라도 그들이 당신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모범적인 행동 방식을 전수한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이유. 끼리끼리 유유상종은 과학. 

 

 

 

이렇듯 주변 사람들이 우리의 아비투스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특별히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 아비투스는 전염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대하고, 어떤 옷을 입고, 무엇으로 집을 꾸미고, 무엇을 바람직하고 아름답고 합법적이라고 여기는지 저절로 알게된다. 우리가 그 태도를 철저히 거부하지만 않으면 우리는 곧 그것에 감염된다.

 

일단 좋은 사회집단이나 커뮤니티에 소속되고 그 속에 점차 스며들면 나도 그런 사람들을 닮아서 좋은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 

 

 

"직업적으로 어려움에 처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제일 먼저 전화를 걸 세 사람을 꼽는다면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블로거 브렛 맥케이가 사회자본 확장에 관한 팟캐스트에서 이렇게 물었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덧붙였다.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만 전화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매일 통화하는 사람 혹은 친밀도에 따라 적어도 3개월이나 6개월 마다 통화했던 사람일 것입니다"

목이 마르기 전, 10년 전에 우물을 파두는 것이 가장 좋다" 다시 말해 필요한 일이 생기기 전에 관계를 돌보는 것이 가장 좋다. SNS를 통해 얻은 연락처는 시작에 불과하다.

 

일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어찌보면 인맥을 형성하고 관리하는 것.  그리고 내가 못하는것. 앞으로는 노력해야지.

 

 

"늘 도움이 되어라.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었으면 설거지를 도와라. 파티에서 구석에 우울하게 서 있는 사람과 얘기를 나눠라. 지역 시민 단체 활동에 참여하라. 긍정적인 일이라면 함께하고 공헌하라" 

노력하되 무언가를 돌려받게 되리란 기대를 버려라.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리는가? 얻을 게 없는데 도대체 왜 스트레스를 감수해야 할까? 간략히 말하면 행운의 우연이 당신을 도울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커뮤니티 구축은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결정적인 조언 하나, 흥미로운 질문, 놀라운 통찰 등은 종종 오각형을 그리며 우회적으로 온다. 

 

공감가는 문장이다. 어찌보면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거나 문제 해결에 돌파구가 되는것은 옆사람의 조언 한마디나 우연한 만남일 경우가 있다.  항상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흐르지 않고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사회적으로 연출된 모습을 보여주며 즉흥적인 충동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이런 태도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상류층은 그 무엇보다 자신의 영역을 더 보호한다.